가예믹 VISIBLE / VULNERABLE : 빛나는 그림자 | 공모기획전


가예믹 ( KAYE MIK )

VISIBLE / VULNERABLE : 빛나는 그림자

2026.03.18 -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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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Statement l 작가 노트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안전수칙(Safety rules)’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비행기를 타면 가장 먼저 안전 안내 책자를 확인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비상 망치의 위치를, 공공장소에서는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었고, 삶을 지탱하는 기본 질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은 때때로 나를 압박하기도 했다.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작은 강박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르며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는 테러, 전염병, 각종 재난을 목격하면서 나는 안전이 단지 개인적인 습관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집단적 감각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년간 거주하던 시절, 사람들은 일상적인 인사 대신 “Home safety”라는 말을 자주 건넸다. 그 표현은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안전을 기원하는 말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 경험 이후 나는 형광 안전 조끼(Hi-Vis jacket)를 현대 사회의 상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쉽고 최소한의 장치이자, 동시에 가장 눈에 띄는 복장. 나는 이를 ‘Modern Armour(현대의 갑옷)’라 명명했다. 하지만 이 갑옷은 역설적이다. 밝은 색은 타인의 시선을 끌고, 보호를 위한 장치는 오히려 표적이 되기 쉬운 조건이 된다. 또한 그것은 천으로 만들어져 실질적인 방어 기능은 미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입는 순간 안전하다고 믿는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인간의 이중성을 발견했다. 우리는 드러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숨고 싶어 한다. 주목받고 싶지만, 위험에 노출되기는 원치 않는다.

나는 이러한 모순을 도로 위의 안전 장치들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한다. 언제나 빛나고 서 있지만,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존재들. 눈에 띄지만 투명한 것들. 그들은 곧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였다. 내 작업에서 ‘드러남’은 곧 ‘타겟’이 되고, ‘숨고 싶음’은 ‘안전’ 혹은 ‘보호받고 싶은 마음’으로 정의된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는 스캔 작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개념을 확장한다. 구겨지고 뒤틀린 이미지들을 스캐너 위에 올려 평면화 하는 행위는, 마치 사건의 증거를 채집하고 기록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스캔 된 이미지는 결코 완전한 진실이 아니다. 왜곡과 압착, 빛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그것은 사실과 해석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나는 ‘안전’이라는 개념이 과연 실질적인 보호인가, 아니면 우리가 믿고 싶은 환상인가를 질문한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규칙과 장치들은 실제로 우리를 지켜주는 것일까, 아니면 불안을 잠시 유예시키는 상징에 불과할까?

이 작업들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갑옷을 입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그 갑옷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우리는 빛나며 보호받고 있다고 믿지만, 그 빛은 언제든 타겟이 될 수 있다. 안전을 향한 욕망과 노출의 공포 사이에서, 나는 그 모순된 감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