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환 뿔의 문 | 공모기획전


조 덕 환 ( JO deokhwan )

뿔의 문

2024.08.14 -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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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하얀 캔버스에 점이 찍히고 서서히 번지면서 아이의 얼굴이 되고 그 위에 요술 모자가 씌워지고 또 다른 존재를 초대하면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세상은 상상에 대한 캔버스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무한한 우주의 세계는 아직 맞춰지지 않는 퍼즐의 보물섬이며 나는 그 세계의 중심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아이, 즉 내 자신을 바라본다. 

매일 떠오르는 상상을 붙잡으며 그림 속의 아이들에게 나를 투영하여 과거의 나와 대화를 하다보면 작가로서의 현재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 시도하게 된다.


내가 그리는 아이들은 우리가 버스나 놀이공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호수와 해변 사이에서 흔들리는 금빛 바람이자 깊은 산속의 길목마다 인사하는 정령이며 어릴적 함께했던 동화나 만화책속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경이로운 페르소나이며 세계의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는 가치이다. 


1980년대 한국의 낭만과 중세 고딕 회화같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시대나 아이콘들이 나의 그림에서 섞여져서 하나의 요술모자, 하나의 은띠가 되어 빙그르르 서로를 비추면서 회전하게 된다. 

결국 내가 표현하고자하는 세계는 그림 안에서 아이들이 자발성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상상의 겹들이며 우리가 잊고 있던 서랍속의 노스탤지어이다.


메를로 퐁티는 보는 자 le voyant는 그 자신이 가시적인 것 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보는 것을 자신의 소유로 삼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사물들도 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율배반적 봄vision은 결정속의 근원적인 물처럼 감각하는 자와 감각하는 것의 미분화가 유지된다.


그렇다면 꽃을 보면서 이름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미립화되어 흩어지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본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금 전 꽃이 아닌,  보는 자voyant의 인식과 상상의  새로운 결과물이 대신해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마치 세잔이 매일 보던 그 산처럼 작가만의 산이 되듯이 어떠한 한송이도 각자의 투영으로 인하여 같은 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얼굴이라는 꽃에,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총체들이 모여서 반짝이고 있다면  이름을 붙이지 않고 생성과 소멸사이의 과정으로 간직하며  사유와 상상의 이젤앞에 계속 앉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