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미(JO JEONGMI) Pathway Home | 공모기획전

주 정 미 ( JO JEONGMI )

Pathway Home

2024.11.13 - 11.22


VIEW






































작가노트 

 

 내 유년의 기억은 집보다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이 선명하다. 아파트만큼 키가 자란 플라타너스와 색이 바랜 높은 미끄럼틀, 녹슨 토끼 머리를 단 그네, 날리는 모래 먼지와 놀이 친구가 한눈에 보이는 장면은 늘 머리가 향하는 언덕으로 남아있다. 그곳은 크고 나서도 두고두고 돌아가 서성이곤 했는데, 십여 년 전 철거되었다. 이후 나고 자란 곳에 가도 고향에 온 것 같지 않았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집과 집을 전전하며, 고향은 더 이상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마음 속 시원(始原)의 공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닿을 수 없어도 향할 수밖에 없는 곳, 수많은 (실패할) 여정을 끌어내는 원동력.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삶 자체일지 모를 그 여정을 긍정해 내야만 하며, 나의 경우 그림을 통해 그 시도를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데, 즉흥적으로 선을 쌓고 어떤 이미지가 연상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물감의 흐르는 성질을 이용하여 여러 작은 물길을 터놓고 지켜보기도 한다. 필름에 상이 맺히듯 화면에 겪고 읽고 생각해 온 것들의 잔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주어진 형상이 나를 이야기로 이끌어가도록 둔다. 이 단계에서 내 의지나 의도는 힘이 없다.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단계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공간감을 찾아가는데, 어떤 우연, 우발적인 사건에 순종하면서도 모종의 균형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여정'을 긍정하기 위한 시도와 길을 같이한다. 각각의 그림은 실패의 기록이며, 기꺼이 실패해 가겠다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