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구, 홍준호
METAMORPHOSIS
2022.10.07 - 10.18
VIEW










스페이스 홍과홍에서 한지 프린트와 전시를 지원해주는 공모를 모집했습니다
그중 가장 공모 의도와 잘 맞는 작가 2명을 모아 <METAMORPHOSIS> 를 열었습니다
한지가 아니면 작업이 되지 않는 두 작가가 어떻게 한지의 특성을 이용해 변화시켰는지
관객들이 새로운 경험을 느꼈으면 합니다
“ 변신은 능동적일 때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변신은 격변하는 시대흐름을 읽어내고 그에 맞게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김원익 <신화, 세상에 답하다> 중
HNH 갤러리 대표 홍수정
도용구 작가 노트
Urban humanity
돌은 자연의 극한 조건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생성되고 소멸되며, 곱게 마모되기도 하고 거칠게 쪼개어지는 인고의 물질이다.
그래서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고 본래의 성질과 외부적 요인으로 완성된 조형물처럼 보인다.
내가 만난 해안가 절벽 아래 쌓여 있는 돌 들은 마치 이 인류세에 머무르는 척박한 인간의 모습 처럼 보인다.
우리 인간은 순수한 상태로 태어나 서로 다른 존재와의 만남과 깨달음을 통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인간의 모습 또한 피부색, 외형부터 내면의 성격과 감정까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기에 인간의 존재가 있다.
다름으로서 사랑도 생기고 끊임없는 갈등도 생기는 것이다.
나는 도시의 삶 속에서 도시의 추상적 풍경을 담아왔다. 거대한 마천루의 창에 또 다른 마천루가 반사되고,
규정된 차간거리를 유지한 자동차들의 패턴은 획일적이지만 어수선 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인간은 마치 대량 생산의 양품처럼 구획을 나누어 자리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도시 속에서의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각자의 주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질문하며 돌에 도시의 껍데기를 입힌다.
도시의 추상적 풍경이 거친 돌의 외피가 되면, 하나의 돌로 보일까. 그저 껍데기 였을까.
나는 해안가의 천연석을 주워 모으고 있다. 자연의 풍파에 의해 만들어진 돌 들의 지질적 의미는 매우 유형적이고 기록적이다.
예컨대 한국의 서해안에서 수집한 돌은 형태가 거칠고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이 크지 않아 대부분 날카롭다.
이러한 수집과 관찰은 카메라로 이미지를 담아 내거나, 스케치를 통하여 그대로 옮겨 그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돌의 형질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수집하며 견뎌야 하는 돌의 물리적인 무게는 작업에 대한 책임감과 인내의 깨달음을 준다.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한지에 도시 사진을 프린트하였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빌려온 돌 들은 언제든 자연에 돌려 보냈을 때 깨끗한 씻김이 일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화학적 접착을 배제하고 한지와 아교를 통하여 도시의 외피를 붙여 두었다.
홍준호 작가 노트
숀 레비(Shawn Levy, 1968~) 감독의 가족 코미디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 2006)’를 인상 깊게 본 후, 영화 촬영 장소였던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실제 마주한 동물들의 박제는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에 내 모든 신경은 곤두섰었다.
그런데 죽어서도 죽지 못해 슬픈 눈을 가진 존재와 눈을 마주친 찰나에 나는 온몸이 굳어버린 채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야생성을 잃어버린 눈과 더 이상 맹수로서의 얼굴도 사라져 버린 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과 관람객에 의해 둘러 쌓여 있었다. 인간에 의해 굳혀져 눕지도 쉬지도 못하고 눈뜨고 있어야 하는 그리고 죽어서도 썩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채 인간의 교육과 유희를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그들은 너무나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눈을 외면한 채 동물원과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어 그들의 생과 사를 관리하고 있다. 동물과 같은 생명의 죽음 마저도 물질로 재화화해서 가치판단하고 존재로 대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다.
2020년에 발생한 호주 산불에서 화상을 입고 그을음과 연기를 마신 코알라(Koala)가 물을 마시는 모습이 뉴스와 외신들을 통해 전세계에 전달되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기후온난화 등으로 이제는 머지않아 자연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져 가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이들을 책이나 영상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될 날이 오고 있다.
이번 작업은 자연사 박물관 유리 속에 전시된 죽음의 마스크(imago)가 프린트 된 사진 이미지를 통해 동물의 존재적 기록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 그 흔적을 위해 희생되어 인지할 수 없는 종이와 잉크라는 물질의 존재를 감각하도록 종이 겹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물질(박제 된 동물의 죽음) 너머에 또 다른 무엇을 감각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도용구, 홍준호
METAMORPHOSIS
2022.10.07 -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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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홍과홍에서 한지 프린트와 전시를 지원해주는 공모를 모집했습니다
그중 가장 공모 의도와 잘 맞는 작가 2명을 모아 <METAMORPHOSIS> 를 열었습니다
한지가 아니면 작업이 되지 않는 두 작가가 어떻게 한지의 특성을 이용해 변화시켰는지
관객들이 새로운 경험을 느꼈으면 합니다
“ 변신은 능동적일 때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변신은 격변하는 시대흐름을 읽어내고 그에 맞게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김원익 <신화, 세상에 답하다> 중
HNH 갤러리 대표 홍수정
도용구 작가 노트
Urban humanity
돌은 자연의 극한 조건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생성되고 소멸되며, 곱게 마모되기도 하고 거칠게 쪼개어지는 인고의 물질이다.
그래서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고 본래의 성질과 외부적 요인으로 완성된 조형물처럼 보인다.
내가 만난 해안가 절벽 아래 쌓여 있는 돌 들은 마치 이 인류세에 머무르는 척박한 인간의 모습 처럼 보인다.
우리 인간은 순수한 상태로 태어나 서로 다른 존재와의 만남과 깨달음을 통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인간의 모습 또한 피부색, 외형부터 내면의 성격과 감정까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기에 인간의 존재가 있다.
다름으로서 사랑도 생기고 끊임없는 갈등도 생기는 것이다.
나는 도시의 삶 속에서 도시의 추상적 풍경을 담아왔다. 거대한 마천루의 창에 또 다른 마천루가 반사되고,
규정된 차간거리를 유지한 자동차들의 패턴은 획일적이지만 어수선 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인간은 마치 대량 생산의 양품처럼 구획을 나누어 자리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도시 속에서의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각자의 주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질문하며 돌에 도시의 껍데기를 입힌다.
도시의 추상적 풍경이 거친 돌의 외피가 되면, 하나의 돌로 보일까. 그저 껍데기 였을까.
나는 해안가의 천연석을 주워 모으고 있다. 자연의 풍파에 의해 만들어진 돌 들의 지질적 의미는 매우 유형적이고 기록적이다.
예컨대 한국의 서해안에서 수집한 돌은 형태가 거칠고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이 크지 않아 대부분 날카롭다.
이러한 수집과 관찰은 카메라로 이미지를 담아 내거나, 스케치를 통하여 그대로 옮겨 그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돌의 형질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수집하며 견뎌야 하는 돌의 물리적인 무게는 작업에 대한 책임감과 인내의 깨달음을 준다.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한지에 도시 사진을 프린트하였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빌려온 돌 들은 언제든 자연에 돌려 보냈을 때 깨끗한 씻김이 일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화학적 접착을 배제하고 한지와 아교를 통하여 도시의 외피를 붙여 두었다.
홍준호 작가 노트
숀 레비(Shawn Levy, 1968~) 감독의 가족 코미디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 2006)’를 인상 깊게 본 후, 영화 촬영 장소였던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실제 마주한 동물들의 박제는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에 내 모든 신경은 곤두섰었다.
그런데 죽어서도 죽지 못해 슬픈 눈을 가진 존재와 눈을 마주친 찰나에 나는 온몸이 굳어버린 채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야생성을 잃어버린 눈과 더 이상 맹수로서의 얼굴도 사라져 버린 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과 관람객에 의해 둘러 쌓여 있었다. 인간에 의해 굳혀져 눕지도 쉬지도 못하고 눈뜨고 있어야 하는 그리고 죽어서도 썩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채 인간의 교육과 유희를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그들은 너무나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눈을 외면한 채 동물원과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어 그들의 생과 사를 관리하고 있다. 동물과 같은 생명의 죽음 마저도 물질로 재화화해서 가치판단하고 존재로 대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다.
2020년에 발생한 호주 산불에서 화상을 입고 그을음과 연기를 마신 코알라(Koala)가 물을 마시는 모습이 뉴스와 외신들을 통해 전세계에 전달되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기후온난화 등으로 이제는 머지않아 자연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져 가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이들을 책이나 영상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될 날이 오고 있다.
이번 작업은 자연사 박물관 유리 속에 전시된 죽음의 마스크(imago)가 프린트 된 사진 이미지를 통해 동물의 존재적 기록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 그 흔적을 위해 희생되어 인지할 수 없는 종이와 잉크라는 물질의 존재를 감각하도록 종이 겹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물질(박제 된 동물의 죽음) 너머에 또 다른 무엇을 감각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