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ALS IN THE POCKET
BANANALONG GALLERY 기획단체전
참여작가
Petals : 신무경, 유영대, 이홍석
Friends : 백정록, 서이, 지미한, 최나리
Collection : 김수민, Vincent Mclndow
기간 : 2026.04.29 - 05.08
관람시간 : 13:00 - 19:00
장소 : HNH 갤러리(서울 충무로2가 52-4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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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경
유영대
이홍석





주머니 속 꽃잎(囊中之花, Petals In The Pocket)
세 개의 세계, 하나의 우연
어느 오후, 기획자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도, 예정된 도착지도 없는 산책이었다. 그 무심한 걸음 속으로 꽃잎 세 장이 날아들었다. 바람이 보낸 것인지, 세계가 건넨 것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열린 주머니 안으로 꽃잎이 날아들었다. 그는 멈추었다. 손 위에 올린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세 장이었다. 그 순간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완전했다. 이것이 이 전시의 시작이다.
우연이라는 철학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의 시학(The poetics of space)』에서 몽상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려 있을 때 찾아온다고. 주머니는 닫힌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몸에 붙어 있는 가장 사적인 빈 곳, 우리가 손을 집어넣을 때만 존재를 드러내는 비밀의 장소다. 꽃잎은 그 빈 곳을 스스로 선택했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는데 당도한 것-그것이 아름다움의 본래 형식이다.
사진가 이홍석, 조각가 신무경, 도예가 유영대.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고, 서로 다른 재료를 손에 쥐었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만져왔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기획자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미 세계 안 어딘가에 잠재해 있던 친화력이 기획자라는 통로를 통해 현실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 꽃잎처럼.
세 개의 손, 세 개의 시간
예술에서 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손이 사유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손은 단순히 신체 기관이 아니다. 손은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열어젖히는 열쇠다.” 이 전시의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손의 언어를 구사한다.
이홍석은 셔터를 누르는 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손은 단순히 빛을 포착하는 손이 아니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현장에서 출발하여 콜라주의 층위를 쌓고, 마침내 AI와의 협업으로 이미지의 경계를 묻는 자리까지 왔다. 그의 일관된 주제는 인간과 사물이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변형된 인간, 기억 속의 인간, 아직 오지 않은 인간 그리고 사물과의 관계. 그에게 사진은 세계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생동하는 사물을 탐문하는 질문이다. 셔터 소리는 물음표다.
신무경의 손은 이 세계의 골격인 금속을 다스린다.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을 거치면 사색의 형태를 갖게 된다. 그의 조형은 완성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형태들, 스스로 안으로 굽어드는 선들, 무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부유하는 듯한 금속의 면들-이것들은 보는 이에게 함께 생각하자고 청한다. 사색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이 관객의 내면에 공명 상자를 만들어 놓는다는 뜻이다. 신무경의 조각 앞에 서면 우리는 조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어떤 생각 하나를 각자 만지게 된다.
유영대의 손은 흙을 알고 있다. 그것도 아무 흙이 아니라, 수백 년의 시간이 요구하는 흙, 조선의 달항아리가 태어나는 흙을. 달항아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개의 반구를 이어 붙인 것이기에 언제나 약간의 비틀림, 약간의 불균형을 지닌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살아있음의 증거다. 유영대가 달항아리를 빚는 것은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흙의 본질로 세계에 응답하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그 응답이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無常)과 현존 사이에서
세 작가의 작업을 하나의 사유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상(無常)과 현존의 긴장이다. 불교 미학에서 무상은 허무가 아니다. 모든 것이 흘러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빛난다는 통찰이다. 일본 미학의 핵심 개념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사물의 슬픈 아름다움-는 바로 이 무상 속에서 피어난다. 벚꽃이 아름다운 것은 지기 때문이다. 꽃잎이 손에 닿는 순간이 경이로운 것은 그것이 곧 사라질 것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이홍석의 사진은 찰나를 붙든다. 셔터가 닫히는 그 0.001초에 세계의 한 조각이 영원에 박힌다. 그러나 그가 콜라주로, AI로 나아가는 여정은 그 찰나조차 고정된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미지는 겹치고, 변형되고, 이전의 맥락을 잃고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의 인간과 사물의 탐구는 존재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이야기라는 인식 위에 서 있다.
신무경의 금속은 무상의 역설을 물질로 증명한다. 금속은 영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사색의 형태들은 시간 속에서 산화되고,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표정을 가지며, 보는 이의 내면 상태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영원처럼 단단한 재료가 유동적인 내면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것이 신무경의 역설적 조형의 시학이다.
유영대의 달항아리는 이 긴장의 가장 오래된 형식이다. 조선의 도공들이 달항아리를 만들 때 그들은 달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달의 본질-둥글고 온화하며 완전하지 않아서 오히려 살아있는-을 흙 위에 불러낸 것이다. 달항아리는 완성의 미학이 아니라 화이트헤드의 과정의 미학이다. 한 번의 불 속에서 결정되는 유약의 표정,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가마 속의 무수한 우연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항아리의 철학이다. 유영대가 그 전통을 이어받는 것은 그 철학적 태도를 이어받는 것이다.
통섭의 자리, 꽃잎이 내려앉는 곳
한 전시 공간 안에서 사진과 조각과 도자기가 만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조각은 공간의 예술이다. 도자기는 시간의 예술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사실 서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빛이 없으면 조각의 형태가 보이지 않고, 공간이 없으면 사진이 걸릴 벽이 없으며, 시간이 없으면 사진도 조각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세 매체는 서로를 전제한다.
이 세 작가는 각자의 매체에서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홍석은 묻는다: 존재란 무엇인가. 신무경은 묻는다: 생각은 어떤 형태를 갖는가. 유영대는 묻는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오는가. 그리고 이 세 질문은 사실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가장 오래된 물음.
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예술 경험을 “지평의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라 불렀다. 서로 다른 지평을 가진 것들이 만날 때, 각각이 확장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의 지평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홍석의 사진, 신무경의 조각, 유영대의 달항아리가 한 공간에 놓이는 것은 세 개의 지평이 만나는 사건이다. 그 만남에서 태어나는 것은 세 작품의 합산이 아니라, 세 작품이 서로를 비추면서 드러내는 전혀 새로운 빛이다.
전시장은 주머니다
다시 꽃잎으로 돌아가자. 주머니는 원래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이 꽃잎이 들어올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전시장은 주머니다. 처음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비어 있다. 그리고 세 작가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들어온다-이홍석의 인간과 사물에 대한 오랜 응시, 신무경의 금속이 품은 사유, 유영대의 흙이 기억하는 온기. 이 세 가지가 전시장이라는 열린 공간 안에서 만날 때, 그것은 꽃잎처럼 가볍고, 예기치 않은 사건이 되어 관객의 내면 어딘가에 내려앉을 것이다.
노자(老子)는 말했다. “당기지유 유지이위용(當其無, 有室以之用)-방의 비어 있음이 방의 쓰임을 만든다.” 전시장의 의미는 걸려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 사이의 비어 있는 공기에 있다. 이홍석의 사진과 신무경의 조형과 유영대의 달항아리 사이의 공기, 그 공기 속에서 세 작가의 서로 다른 세계가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눌 것이다. 관객은 그 대화의 목격자가 될 것이다. 꽃잎 세 장이 한 주머니 속에 모였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필연을, 기획자는 전시라고 부른다.
에필로그 - 미래를 향한 문
회화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면서 동시에 가장 젊은 언어다. 손과 안료와 화면이 만나는 그 원초적인 자리에서, 젊은 작가들은 매일 새로운 문장을 쓴다. 어떤 문장은 거칠고 어떤 문장은 섬세하며 어떤 문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미완성이 오히려 전시장 안에 살아있는 숨결을 들여온다.
이홍석의 사진이 인간을 묻고, 신무경의 조각이 생각의 형태를 빚고, 유영대의 달항아리가 온기로 침묵하는 그 자리에, 젊은 회화 작가들의 화면이 더해진다. 완성된 세계 사이로 아직 진행 중인 세계가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연못에 작은 돌 하나가 떨어지는 일과 같다. 연못은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연못을 더 살아있게 만든다.
바슐라르는 말했다. 집은 과거를 품고, 문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고. 이 전시의 세 중견 작가가 집이라면, 젊은 회화 작가들은 그 집에 달린 문이다. 문은 벽의 부재가 아니라 벽이 스스로 열기로 결정한 자리다. 그 자리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들어오고, 또 다른 꽃잎이 들어온다. 주머니는 여전히 열려 있다.








